2번째이야기, 미국 장기채에 절반을 건 판단, 3년 차에 스스로 채점해보기

지난 글에서 내 포트폴리오의 절반이 미국 장기채라고 공개했다. 손실 약 1,032만 원 중 940만 원이 여기서 나왔다. 오늘은 그 판단을 처음부터 다시 꺼내 채점해보려고 한다.


시작은 금리 인상이 한창이던 2023년

장기채를 본격적으로 사기 시작한 건 2023년 초였다. 벌써 3년쯤 됐다. 미국 기준금리가 4%대 후반까지 치솟던 때였고, 국내에도 환헷지 미국 국채 ETF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나는 이게 오래갈 수 없다고 봤다. 빚으로 굴러가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고금리는 말이 안 되는 논리였다. 정부도, 기업도, 가계도 버틸 수 없으니 금리는 곧 정점을 찍고 내려올 거라고 생각했다. 금리가 내려가면 가장 크게 오르는 게 장기채다. 그 장면을 기다리며 샀다.

그런데 금리는 2월 4.75%, 3월 5.00%, 5월 5.25%를 지나 7월에는 5.50%까지 올라갔다. 5.5%까지 갈 줄 누가 알았겠나.

2023년 미국 기준금리 상단 4.75%에서 5.50%까지 — 장기채 본격 매수 시점

처음엔 크게, 그다음엔 조금씩 계속

처음에 크게 샀다. 그리고 계속, 계속, 계속 조금씩 더 샀다. 떨어질 때마다 평단을 낮춘다는 생각이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포트폴리오의 절반이 장기채가 되어 있었다.

TLT만 사지 않은 이유

엔화로 산 2621. 엔저라고 생각했다. 엔화가 이미 충분히 싸니까, 엔화로 미국 장기채를 사두면 채권이 오를 때 엔화 회복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엔저가 더 심해질 줄은 몰랐다. 그 결과가 계좌에 따라 -9.23%, -23.65%다.

국채 커버드콜. 커버드콜은 횡보할 때 좋다고 생각했다. 높은 분배금이 들어오고, 그걸로 또 사면 된다. 오를 때 전부 따라가지 못하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오를 때 조금은 오른다. 못 따라간 몫은 그동안 받은 배당으로 만족하면 된다.

흔히 커버드콜은 한 번 크게 빠지면 회복이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장기채는 이미 많이 내려왔다. 더 내릴 게 많지 않으면, 회복해야 할 구멍도 크지 않다고 봤다.

커버드콜 ETF는 어떻게 움직일까?
기초자산을 들고 있으면서 콜옵션을 팔아 프리미엄을 받는 구조다. 횡보장에서는 프리미엄이 쌓여 유리하다. 상승장에서는 오를 몫의 일부를 포기한다. 하락장에서는 프리미엄만큼 덜 빠질 뿐, 하락은 그대로 맞는다.
국채 커버드콜 ETF 횡보·상승·하락 시 움직임


3년 동안 왜 안 팔았나

팔고 싶은 순간은 항상 있었다. 그런데 팔아서 옮겨 탈 이유가 없었다. 나스닥이 폭락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싸게 살 곳이 생긴 게 아니라면, 손해를 확정하면서까지 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내가 정한 매도 조건

언제 팔 거냐고 물으면 답은 정해져 있다.

  1. 나스닥이 대폭락할 때
  2. 금융위기가 올 때
  3. 이유가 뭐든 금리가 내려 국채가 폭등할 때

지금까지 위기 상황에서는 보통 금리가 낮아져 왔다. 위기가 오면 돈은 안전자산인 국채로 몰리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린다. 그러니 장기채는 언젠가 올 위기에 쓸 수 있는 카드이기도 하다. 주식이 무너질 때 채권을 팔아 주식을 싸게 사는 것. 지금 이 채권들이 기다리는 건 그 순간이다.

미국 장기채 매도 조건 세 가지


채점: 틀린 건 '언제'였다

  • 금리 방향: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고금리가 영원할 수는 없다.
  • 타이밍: 틀렸다. "곧"이라고 생각한 게 3년이 됐다.
  • 엔화 베팅: 틀렸다. 바닥이라고 본 곳 밑에 지하실이 있었다.
  • 커버드콜: 판단 보류다. 횡보까지는 맞았는데 하락이 겹쳤다.
  • 매도 원칙: 있다. 감정이 아니라 조건으로 판다.

결국 내 판단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틀린 건 '언제'였다. 그리고 장기투자에서 '언제'를 맞히는 건 원래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 판단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시간이 채점해줄 것이다. 그때 다시 꺼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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