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를 향해서 0번째 이야기, 게임 속 아이템 장사꾼이 미국 지수 투자자가 되기까지

얼마 전 초등학생 때 일기장을 꺼내 봤다. 펼쳐보니 웃음이 났다. 일기의 대부분이 게임 이야기였는데, 캐릭터 레벨을 올렸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아이템을 얼마에 사서 얼마에 팔았다." 그게 그날의 가장 기쁜 일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집에서 돈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돈 욕심이 컸다. 게임을 해도 캐릭터를 키우는 것보다 게임 속 돈을 모으고 불리는 게 더 재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슬픈 이야기이다.


동전주가 싸 보였던 시절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19살에 취업했다. 첫 월급부터 적금을 들었고, 주식이 뭔지도 모르면서 처음 산 종목이 갑을메탈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쌌다. 동전주였으니까.

그때는 몰랐다. 주가가 싸다고 회사가 싼 게 아니라는 걸. 주가에 발행 주식 수를 곱해야 회사의 몸값(시가총액)이 나온다는 것도. 그렇게 주식을 사놓고 군대에 갔다. 그게 내 투자의 시작이었다.

주가와 시가총액의 차이 — 주가 × 발행 주식 수 = 시가총액

"망할 리 없는 회사"라는 착각

다음은 LG디스플레이였다. 몇십만 원을 벌었는데, 그때의 나에겐 큰돈이었다. 그 경험이 문제였다. 떨어져도 결국 다시 오른다고 믿게 됐다.

마침 군 복무하던 곳 근처에 LG디스플레이 단지가 엄청 크게 있었다. 매일 그 규모를 보면서 "이런 회사가 망할 리 없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갖고 있던 LG디스플레이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LG디스플레이를 또 샀다.

다행히 금액이 크지 않아서 결국 다 갚았다. 물린 주식은 물린 대로 두고, 월급이 들어오면 주식담보대출부터 1순위로 갚았다. 그 과정에서 몸으로 배운 게 있다. 주식담보대출은 이자가 비싸고, 신용등급을 생각보다 많이 깎아 먹는다. 1등급이던 신용등급이 4등급까지 떨어졌다.

지금 돌아보면 실수는 세 개였다. 한 번 번 경험을 실력으로 착각한 것, "회사가 크다"와 "주가가 오른다"를 같은 말로 여긴 것, 그리고 그 믿음에 빚까지 얹은 것.

LG디스플레이 주식담보대출에서 배운 세 가지 투자 실수

국내주식을 떠난 이유

국내주식도 꽤 해봤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아직 자본주의가 덜 된 시장이었다. 주주환원은 인색하고, 이익은 주주보다 그들끼리 나눠 갖는 것처럼 보였다. 요즘은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는데,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은 박스피 안에서 몇만 원 단위로 사고팔며 감을 유지하는 정도만 하고, 나머지는 전부 미국주식에 투자한다.


지금의 원칙: 지수, 장기, 배당성장

여러 번 넘어지고 나서 정착한 방식은 단순하다. 되도록 지수에 투자하고, 오래 들고 가고, 배당이 커지는 걸 즐긴다.

지수 투자, 장기보유, 배당성장 — 지금의 투자 원칙

흔히 "투자할 돈부터 떼어놓고 남은 돈으로 생활하라"고 한다. 나는 반대로 해왔다. 쓰고 남은 돈을 투자했다. 대신 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지금이야 해외여행도 종종 가지만, 옛날엔 버스비 아끼려고 걸어 다니던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경제적 자유

나에게 경제적 자유는 일을 안 하는 상태가 아니다. 나는 나이 들어서도 일하고 싶다. 다만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면 지루해지고, 그때부터 일이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건 이거다. 흥미 있는 분야라면 뭐든 해볼 수 있는 상태. 언제든 그만둘 수 있고, 돈을 적게 받아도 괜찮은 상태. 그게 내 추구미다.


이 블로그에서 할 이야기

앞으로 이곳에 경제적 자유로 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고 한다. 금액도, 수익률도, 실수도 전부 공개할 생각이다. 대단한 금액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보는 이미 넘쳐난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건 장기투자를 버티는 멘탈,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 실제로 걸어가는 길이다.

다음 글에서는 지금 내 포트폴리오를 숫자 그대로 공개해보겠다.

사주배너